단양군 단양읍 수촌리에 봉사를 위해 일생을 바친 의인이 있어서 화제다.
수촌리에서 부녀회장을 하며 마을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이화자 할머니는 살아온 이야기를 해달라는 기자의 말에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꺼냈다.
할머니는 1947년에 가곡면 대대리에서 태어나 간신히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19살(1966년)에 어의곡리 송정마을로 가마 타고 시집을 왔다.
1990년 젊은 나이에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할머니는 살기 위해 악착같이 무슨 일이든 하면서도 마을을 위해 부녀회장, 선거 활동장 등을 역임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관광을 시켜드리는 등 지역을 위한 봉사를 시작했다.
할머니는 돈을 모을 새도 없이 봉사에 힘썼다.
재산도 없이 현재 수촌리로 이사를 간 할머니는 거의 3년 동안 마을 어르신들 점심·저녁을 챙겨드리고 청소하며 마을에 정착했다.
동네 사람들도 점점 마음을 열고 할머니를 받아줬고 할머니는 마을을 위해 새마을지도자로서 10년 동안 봉사하고 현재는 부녀회장과 노인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할머니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마음으로 아들, 딸 신랑도 모르게 수많은 사람을 도왔다.
도와준 분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할머니는 “영춘면에 소녀가장, 지금은 돌아가신 노동리 할아버지, 금곡리에 말씀을 못 하시는 장애가 있던 분 등 너무 많이 생각나지요”라며 말을 이어갔다.
“영춘면에 소녀가장은 아빠는 병원에 있고 할머니랑 사는데 불도 못 때고 집에 들어앉아 있는 거예요”라며 “너무 안돼서 내 돈을 가져다가 도와줬지”라고 회상했다.
또 할머니는 “은빛양로원에 갔다가 어르신들이 생활하는 환경이 너무 열악해 슬퍼서 울었지요”라며 “틈틈이 라면 한 박스씩이라도 가져다드렸었죠”라고 말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을 돕기 위해 할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1년에 몇백만 원을 사용한 적도 있다.
지금도 할머니는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잠옷, 신발, 버선 등을 사드리고 고기도 가끔 사다가 대접한다고 한다.
할머니는 이런 봉사심을 인정받아 새마을 금상·은상, 각종 봉사상 등을 수상했다.
할머니는 “제가 참 봉사가 천직인 줄 알고 수촌리에서 음식점하며 번 돈을 봉사하는 데 다 썼어요”라며 “봉사할 땐 힘도 안 들고 아무리 돈을 써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봉사는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봉사와 평생을 더불어 살아온 단양군 단양읍 수촌리 이화자 할머니 이야기
<사진설명> 지난해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관광을 간 이화자 할머니(좌측 네 번째)